책소개
“호쿠스포쿠스(hokuspokus)”는 라틴어에서 온 말이지만 어원이 분명치 않고 해석이 분분하다. 마술을 부릴 때 쓰는 주문으로 ‘수리수리마수리’ 정도가 되겠다. 극에서는 실제로 주인공 페어 빌레가 간단한 마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국내 초연 당시 이 극에 따라붙는 수식은 ‘마술 연극’이었다.
남편 살해범으로 체포된 아그다의 재판이 진행된다. 변호인마저 아그다의 유죄를 확신하며 변호를 포기한 상태다. 이때 신임 변호인이 등장해 아그다의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는 바로 간밤에 재판장의 집에서 온갖 묘기로 소동을 벌인 ‘페어 빌레’다. 검사는 증인들의 증언으로부터 아그다가 남편을 살해한 정황을 추정한다. 빌레는 화려한 언변으로 청중을 사로잡으며 정황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할 수 없다고 맞선다. 아그다는 사실을 증언할수록 자가당착에 빠질 뿐이다. 마지막 장에서 모든 비밀이 풀리고 삭막했던 법정의 분위기는 화해와 애정의 무드로 반전된다.
비극이 주를 이루는 독일 희곡 전통에서도 희극은 있어 왔지만 무겁게 닫혀 있던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괴츠만큼 웃음과 유머로 열어 주고 사로잡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작가가 부인과 함께 직접 빌레와 아그다를 연기했다.
200자평
토마스 만(Thomas Mann)은 괴츠에게 이렇게 말했다. “쿠르트 괴츠 씨, 내가 일생을 바쳐 작품을 쓰면서도 성취하지 못한 바를 당신은 이룩했군요.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말이오.” <호쿠스포쿠스>는 웃음과 유머로 독일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괴츠의 대표적인 희극 작품이다.
지은이
쿠르트 발터 괴츠(Kurt Walter Goetz, 1888∼1960)는 마인츠에서 태어났다.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붓아버지의 권유와 주선으로 베를린 배우 학교에서 배우 수업을 받은 후 1907년 연극배우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1909년부터 1911년까지 뉘른베르크 극장에서 배우로 활약하다가 1911년 베를린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극단(베를린소극장, 레싱극단, 독일예술극장 등)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입센, 셰익스피어, 스트린드베리, 버나드 쇼의 작품에 주연배우로 출연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통속적인 작품(Boulevard-piece)을 쓰기 시작했다. 이름도 쿠르트 괴츠(Curt Goetz)로 바꿨다.
1912년 배우 니터(Erna Nitter)와 결혼하지만 1917년 헤어지고, 이후 여러 무성영화에 배우로 출연했으며 많은 무성영화 시나리오도 썼다. 1923년 팔레리 폰 마르텐스(Valérie von Martens)와 결혼했다. 자신이 쓴 <잉게보르크> 공연에서 괴츠는 팔레리와 주연을 맡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주인공으로 무대에 함께 등장했다. 1927년, 늘 꿈꾸던 자기 극단을 창단해서 순회공연을 떠났다.
괴츠는 1911∼1933년 베를린에서 연기자로서 여러 배역을 맡아 활동했다. 처음 맡은 배역은 백 살 먹은 노인이었다. 젊은 브레히트를 이끌어 주기도 했던 베를린 최고의 연극 비평가 이어링(Herbert Ihering)은 괴츠에게 최고의 독일 코미디 연기자라는 귀족 칭호를 부여했다. 베를린에서 괴츠는 <잉게보르크>, <호쿠스포쿠스>, <산부인과 전문의 욥 프레토리우스> 등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고, 작품들을 영화로도 만들었다.
1933년 히틀러가 등장했을 때 괴츠는 스위스에 머물고 있었다. 제3제국 즉 나치 독일의 언어는 괴츠가 즐겨 쓰는 유머 섞인 그런 언어가 아니라 무섭고 소름이 돋는 것이었다. 받아 읽던 독일 신문을 모두 사절하고 독일어로 작품을 쓰는 것까지 포기했다. 1939년 3막 희극 <사기꾼과 수녀>가 완성됐고 엠지엠(MGM) 영화사와 계약하고 많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 여행 중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남았다. 캘리포니아에 살며 많은 소설과 희극 작품을 집필했는데 그중 <호쿠스포쿠스>와 단막극 <죽은 아줌마>를 개작한 <몬테비데오의 별장>으로 크게 성공했다. 1945년 이 작품으로 팔레리와 함께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미니아투렌≫이 초연되었던 1958년은 괴츠가 70세 생일을 맞은 해이기도 했다. 괴츠는 그로부터 2년 후 죽었고 부인 마르텐스는 1985년 남편을 기리는 사업으로 코미디 작가에 수여하는 ‘쿠르트괴츠반지(Curt Goetz-Ring)’ 상을 만들었다. 이 상은 5년마다 수여된다.
옮긴이
이재진은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쾰른(Köln)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다. 극작가들 중 레싱, 실러, 클라이스트, 뷔히너, 헤벨, 베데킨트를 중점적으로 연구했다. 특히 브레히트와 뒤렌마트에 전념했다. 뒤렌마트의 <로물루스 대제> 등 많은 작품을 연출했고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 여러 희곡을 번역했다. 방송과 공연을 통해 어린이·청소년극과 라디오 드라마 활성에도 노력했다. <브레히트 후기 희곡 작품의 3차원적 구조에 관하여>, <베데킨트 드라마에 나타나는 여성상과 신화적 특성> 등의 논문이 있다. 단국대학교 명예교수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3
제1막······················5
제2막······················43
제3막······················97
제4막·····················121
해설······················145
지은이에 대해·········154
옮긴이에 대해·········173
책속으로
페어 빌레: 아, 나는 얼마나 취했던가! 술에 취했을 뿐 아니라 서커스의 공연장에 취했고 무엇보다 다시 찾은 내 삶의 목적에 취했던 것입니다!